고통을 겪으면 바보도 현명해진다

     

    헤시디오스는 약간 표현을 달리하여 같은 생각을 표현하였다. 그의 책 <일들과 날들을> 을 보면 "정의롭지 못한 일으 한 사람은 언젠가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것이다. 다만 그가 겪을 고통에서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배우리라" 고하였다.

    호메로스도 그의 책 <일리아스> 제23권에서 비슷한 격언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그리하여 네가 그 값을 치를 때에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책<향연>에서 말한다.


     

    아가톤이여. 나는 당신에게 이것을 말하고 있네. 당신은 이 사람에게 속지 말게. 우리에게 생겼던 일을 통해 배워야지, 당신은 저 유명한 격언의 어리석은 사람처럼 고통을 겪고 난 후에야 교훈을 배우지 말게.


     

    플라우투스의 <상인>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말도 이와 일맥상통하다."다른사람들이 겪은 고생으로부터 지혜를 얻는 자는 행복하다."

    흡사 티불르스도 그의 <사랑의 엘레게> 제3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사람의 근심에서 근심을 피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얼마나 행복한가!" 이 소리는 뒤늦게야 현명해지는 사람들의 한탄과도 같다. "이제야 나는 사랑이 무언지 알았다." "이제야 나는 그녀가 얼마나 고약하고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달았다","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던가? 나는 이제 겨우 그것을 눈치챘다."

     

     이 격언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서 유래한 듯하다. 헤시오도스가 전하는 바로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라는 형제도 이 격언의 교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의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건네준 것에 단단히 화가 난 유피테르는 그를 속여 벌주기 위해 불카누스에게 가능한 온갖 재주를 부려 진흙으로 여인을 만들도록 명령하였다.

     

    여인이 완성되자 이번에는 모든 신과 여신들에게 요구하며 말하되 그녀에게 하나씩 선물을 주도록 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이 여인에게 붙여질 이름이 '판도라'로 채택되었다. 미모와 재주와 지혜와 말솜씨를 모두 갖춘 훌륭한 모습이 완성되자 유피테르르 보기에 아름다우나 그속에는 온갖 재앙을 감추고 있는 상자를 들려 그 여인을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 선물을 거저라였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경계하는 마음에서 동생에게 자신이 없을때 무슨 선물이 오든지 간에 절대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판도라가 다시 왔고 그녀는 에피메테우스를 설득하였고 선물을 건넸다.

     

    에피메테우스가 상자를 열자마자 질병들이 빠져나왔다.

     

    유피테르의 '선물은 선물이 아니었다.' 에피메테우스가 이를 깨달았으나 이미 늦었다. 헤시오도스가 말하길 "그는 상자를 받아 들고 근심에 타격을 입고서 그제야 깨달았다" 라고 하였을 때 분명 헤시오도스는 우리의 격언을 상기하고 있었다.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계보>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 여인이 프로메테우스에게 자식을 낳아 주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의 아들을 '현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실수를 통해 현명해진 에피메테우스에게 자식을 낳아 주었다.

     

    핀다로스는 <퓌티아 찬가>에서 에피메테우스를 ' 늦깍이 현자' 라고 불렀다. 그들의 이름이 그들이 성격을 나타낸다. 희랍어로 프로메테우스는 행동하기 전에 숙고 한다는 의미이며 에피메테우스는 이란 행동이 앞서며 나중에서야 사리판단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프로메테우스 처럼 행동한다. 즉 희랍어 prometheuesthai라는 단어는 불운이 닥쳐올 때 숙고를 통해 대처한다는 의미이다. 루키아노스는 그의 대화편 가운데 하나에서 어떤 희극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어떤 이가 클레온이라는 자를 비난하여 말하길, 그는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현명해진다고 말한다."클레온은 파장한 후의 프로메테우스이다." 루키아노스는 같은 대화편에서 고쳐 말하길 "상황 종료 후에 의논하는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아니고 에피메테우스나 하는 짓이다."

     

     이 격언은 다음과 가은 형태로도 쓰인다."험한 꼴을 눈으로 보고서야 똑똑해진다(para ta deina phronimoteros).  또는 "겪은 것으로부터 배운다"이 희랍어를 다시 옮기면 상처 입은 것 곧 배운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겪은 좋은 못한 일로부터 지혜를 배우는 사람이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희랍 격언에 "나는 다른 이의 악운을 보고 교훈을 얻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쓰는 격언에 따르면 "인간이 더욱 똑똑해지는 것은 창피와 손실을 봄으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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